사회당계 분들께.

by 추공 posted Jun 0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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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당계분들께.


언젠가는 모두 노동당원으로 함께 칭하게 되는 날도 오겠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아니군요. 언더조직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없는 한, 그리고 당이 언더조직의 도구인 한, 이 날은 쉽게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 문제는 단지 사회당계 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금의 사태는 정치 정당을 지나치게 가볍게 생각하는 우리 운동 전체가 만들어 낸 비극적인 결과이기도 합니다. 더 근원적으로는 사회주의 운동이나 맑스주의에 대한 인식의 차이일 수도 있고, 스탈린주의적이고 기형적인 권력이 형성되는 우리 운동의 토양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사회당계 언더조직의 문제로 한정지울 수 없는 것이며 우리 운동 전체의 후진성과 정당운동에 대한 대대적인 인식전환이 가능할 때 비로소 진정으로 극복될 수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는 이런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해결방법도 모색할 수 없었습니다. 비밀주의 정파가 그렇듯이 문제는 언제나 봉합되고 한번 왜곡된 운동관은 비판의 불가능성 속에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굳어져 가는 겁니다. 내부에 이런 문제를 스스로 정화하는 메커니즘이 없고 목소리 큰, 혹은 연령이나 경험등의 모든 면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해 온 소수에게 동등한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집단문화는 우리 운동의 모든 모순이 녹아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우리 운동은 부르주아 합리론자들의 조직형태에도 미치지 못하는 집단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정치정당의 경우 좌우를 막론하고 엘리트주의는 고질화되어 있습니다. 언더조직은 그것의 극단적인 형태입니다.


좌파나 진보의 진정한 의미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본가나 보수적 정치인들만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언가를 지키려는 모든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지요. 이때는 그 사람의 정치적 입장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보수적이게 됩니다. 맑스주의자도 보수주의자가 될 수 있고 반여성주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때 이 사람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인간이 되는거지요. 얼마전에 노동자연대(구 다함께)에서 성폭력사건이 있었습니다. 직접적인 강간은 아니라 할지라도 포르노를 보여주고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것은 엄명한 성폭력입니다. 이 상황을 아시는 분이 많을 거라 자세히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함께는 성폭력피해자를 도리어 모함하고 2차가해를 자행함으로써 더 이상 자신들이 좌파적이지 않다는 것을 자백했습니다. 피해자를 도리어 가해자로 모함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좀 필요합니다. 단순히 “조직은 무조건 옳다”는 신념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나름 그 상황의 잘잘못을 따져봤다고 보아야겠지요. 이때 다함께는 용기내어 피해자를 모함하는 주장을 공식화합니다. 이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이 찌질한 운동권에 적어도 뭔가를 하려고 하는 “조직”일 것입니다. 조직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감내해야만 하는 희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이는 옳은 판단은 아니지만 수긍은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올라온 노동당 게시판의 몇몇 글이 바로 그런 겁니다. 자신이 뭔가를 지키고 남아 있는 언더조직를 추스려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거지요. 저는 이런 판단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을 수호하는 것이 어떤 것보다 우선한다고 교육받았던 사람이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거 뿐이지요. 문제는 이것이 우리 운동 전체를 갉아먹고 (더 죽일 것이 남아 있다면) 노동당을 완전히 죽일 것이라는 겁니다. 전 노동자연대가 아주 쿨하게 성폭력 사실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했다면 그 조직은 완전히 다른 국면을 맞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노력을 해야겠지만 괜찮은 조직이 될 가능성이라도 생긴거지요 우리의 경우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몇몇 폭로자들의 피해 사실을 별거 아닌 일을 침소봉대한다고 주장하거나 도리어 가해자라거나 혹은 조직을 와해시키는 행위라고 주장하는 것은 노동당과 사회당계이 더 이상 좌파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은 보여 줍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글이 진짜 “해당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현재의 국면에서 사회당계를 비호하고 고발자들을 가해자로 모는 행위는 분명 해당행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노동당만 파괴하는 것도 아니며 사실 운동 전체를 보수화시키고 타락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사람은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에라도 반여성주의적이고 위계적 조직의 폭력과 폭력문화에 대해 용서를 빌고 이 사실을 호도함으로써 좌파정치를 또 다른 진흙탕으로 던져넣으려 했던 점에 대해 당원들에게 사과하면 일단 문제는 봉합됩니다. 제발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언더가 무슨 큰 죄를 지었는지 잘 모르겠다거나 비민주적인 것이 왜 문제인지에 대해 모르겠다면 솔직하고 열린 마음으로 토론을 하자고 제안을 하면 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비민주적이고 위계적인 조직의 일반의지는 소수의 권력이 대신합니다. 이때 권력은 “동의”라는 형식을 통해 행사됩니다. 이 권력이 작동하는 장소에서는 조직적 결정은 종종 개인의 결정과 구별되지 않고 자신도 이 결정과 판단에 마음 깊이 동의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게 권력이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언더에 있으면서 언더조직이 비민주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스스로의 자율성을 권위에 맡겨버렸을 때 파괴됩니다.


조직의 핵심은 전제나 보호되어야 한다는 발상은 조직의 첫번째 규율입니다. 조직의 핵심과 비핵심이 어떤 기준으로 정해질까요? 그리고 지금까지의 실패에서 핵심은 무엇을 배웠고 어떻게 책임졌습니까? 사회당계가 조직원들 사이의 폭력사태에 몸살을 앓고 기존의 노동당원들에게 외면당하는 것은 이 핵심의 조직이론과 정치이론이 이미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파산한지 오래라는 사실때문만은 아닙니다. 정당이 지향하는 운동이 언더조직의 가치와 노선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당은 기본적으로 책임정치와 경합적 민주주의를 옹호합니다. 그러나 핵심은 책임지지 않고 파산한 이론은 경합적 민주주의를 봉쇄하였습니다. 조직의 핵심은 보호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 옳은 노선과 가치라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이런 조직문화를 가지고 정당운동을 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위계와 반여성주의를 옹호한다면 좌파정당에서는 적어도 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당계가 당권파가 되어 대외적으로 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완전 비례대표제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위선인겁니다. 왜 정당에서 위선적인 활동을 하며 자신을 갉아 먹습니까?

진상조사단은 일단은 사회당계분들이 바라던 시간도 충분히 벌어줬으니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이 시간동안 흥분한 마음은 좀 가라 앉았고 선거국면으로 전환되었으며 내부의 정치적 판단도 대략적으로 마무리 되었을 겁니다. 물론 노동당이나 우리 운동에 도움이 되는 방향은 아니더군요. 아래 용해인 동지의 글에서 언더조직이 어떤 정치적 판단을 했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발 부탁인데 소탐대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더의 하부조직을 다시 추스리고 다시 똑같은 방식으로 리더십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적어도 진보정당이나 조직원들을 도구적으로 이용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저희가 바라는 것은 단순합니다. 열린마음으로 이 문제를 토론해 봅시다. 그래서 노동당을 다시 살리고 서로의 가치를 존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봅시다.


추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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