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논의, 몇 가지 우려와 희망사항

by 계급전사 posted Mar 1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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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같은 조건들의 충족과 그로 인한 문제들

지난 연말 본격적으로 진보신당을 고민할 당시만 해도 한치 앞이 불투명했다. 대선이후 총선이전이 창당을 위한 절호의 시점임은 틀림없었다.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는데 있어서 정치일정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대선과 총선은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권력재편기이며 대중을 광범위하게 만나며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총선을 앞둔 창당은 기회인 동시에 모험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정당으로 총선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대략 세 가지 정도의 조건이 충족되어야했다. 분리의 이유를 대중이 알아야하고, 대중정치인의 결합이 있어야하며, 노동운동의 (일정정도라도) 지지가 있어야했다. 그 당시로서는 꿈같은 일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몇 달 만에 이러한 조건들은 순식간에 충족되었다. 뉴스속보까지 나간 2월3일 임시당대회를 계기로 이제 대중들은 그 놈의 당이 왜 깨졌는지 (동의하든 아니든) 이유라도 알게 되었다. 노회찬, 심상정 등의 대중정치인들이 결합했고, 비록 신당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단병호 위원장도 탈당대열에 합류했다. 노동운동의 참여는 아직 미흡한 수준이지만 앞의 두 가지 조건들로부터 영향 받을 수밖에 없다.

몇 달 전까지도 기대하기 어려웠던 여러 조건들이 갖춰져 이제 총선에 임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조건들로부터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짧은 기간에 총선을 준비해야하는 시간적 제약 때문에 여러 문제점들은 일단 덮어버릴 수 있다. 어차피 총선 이후에 시간여유를 갖고 내용적 창당을 시작하기로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총선을 앞둔 형식적 창당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은 총선 이후에도 (결과가 좋았을 경우에 더욱) 고착화할 수 있다.


계보정치와 우경화 가능성

짧은 기간에 신당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 대중정치인의 존재는 필수적 조건이 된다. 그러나 또한 명망가 중심의 계보정치 위험성을 갖는 양날의 칼이 되기도 한다. 흔히 민주노총당, 운동권정당 등으로 상징되는 기존 민주노동당 관행을 탈피하기 위한 흐름은 역편향으로서 탈계급적 우경화를 초래할 수 있다. 우경화 가능성은 또한 명망가 중심 계보정치 형성 가능성과 맞물려있기도 하다. 이러한 위험성은 이미 일정정도 현실화하고 있다. 다만 촉박한 일정 때문에 그다지 쟁점이 되지 않을 뿐이다.

비례대표후보 논의에서도 이러한 역편향이 감지된다. 우리가 민주노총당을 탈피하려는 것은 민주노총이 갖는 계급적 토대의 한계를 극복하는 한에서만 진보적일 수 있다. 즉 그것은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80만 조합원의 울타리에 갇혀있는 민주노총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것이지, 진보정당의 노동계급 중심적 성격을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또한 운동권정당에서 탈피한다는 것은 운동권 인맥 중심의 내부질서와 가두집회 위주의 투쟁방식을 넘어서는 것을 뜻한다. 대중적 저변을 확대하여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중정당, 그리고 (운동‘권’정당이 아닌) 사회운동정당을 만들어야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갇혀있는 계급적 토대의 한계를 극복해야 노동계급 중심적 성격을 관철할 수 있는 것이며, 실질적인 계급정당은 곧 실질적인 대중정당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비례대표 논의에 대한 몇 가지 우려

위와 같은 문제의식에 근거해서, 지금 거론되고 있는 비례대표후보 면면을 보면서 몇 가지 우려되는 지점들을 말해본다.

특정 분야의 정책전문가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버려야한다. 국회의원은 자기 부문에서의 전문성을 가져야하지만, 반드시 특정 부문 전문가가 국회의원이 되어야할 필요는 없다. 진보정당 국회의원으로서 보다 더 중요한 자질은 대중운동의 요구를 제도정치 공간에서 실현하고 그 성과가 대중운동 발전으로 귀결되도록 하는 연결고리 역할에 있다. 양자가 상호작용하지 못한다면 제도정치 내에서의 성장도 기약할 수 없으며 그나마 축적한 개량적 성과조차도 지켜낼 수 없다.

진보적 가치에 기초하여 정체성이 모호한 사람은 결코 진보정당의 후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촉박한 일정으로 인해서 비례대표후보에 대한 공개적 검증 기회가 사실상 없기 때문에 더욱 철저한 사전 검증이 필요하다. 예컨대 후보로 거론되는 모 시민단체 간부는 오세훈 서울시장 자문위원 참여 경력 등이 있는데, 그 배경과 활동 내용에 대한 확인이 필수적일 것이다. 우리가 버린 정당에서 자행되고 있는 오류가 진보신당에서 재현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 가지 희망사항

비정규직 몫으로 결정된 이랜드 이남신 후보 이외에 가능하다면 노동운동을 대표할 후보가 하나쯤 더 있어야할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민주노총당을 탈피하려는 시도가 노동계급 중심성을 탈각하는 역편향을 낳아서는 안 된다. 다만 직책과 명망성보다는 활동의 지향과 내용에 대한 고려가 우선해야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후보가 남성으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또 다른 노동 후보는 여성이 돼야할 것이고, 노동 배제적 역편향과 우경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도 적합할 것이다. 본인이 강력히 고사하고 있다고 전해지지만 더욱 적극적으로 권유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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