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과 부문운동의 관계

by 배정학 posted Mar 1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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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된통 아프고 나서 길이 보였다. 어차피 사람의 인력으로 막을 수 없고, 내가 애달아 한다고 달라질 일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지금 뭔 말을 해봐야 갈라치기나 특정한 누군가를 배제하기 위한 말로만 들릴 것이다. 지금 당장 코앞에 놓인 것에 환장한 사람들에게 무슨 소리가 들리겠는가. 모두가 다 바닥을 드러냈을 때 그제서야 말을 알아먹을 것이다. 오늘 그런 생각을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여러 사람들과의 대화속에서 더 확신하게 되었다.

 

바닥을 보고 나서야 도망갈 사람은 도망 갈 것이고, 남을 사람은 그 자리를 계속 지킬 것이다. 혹자는 "난 당 운동 체질이 아냐 아무래도 현장체질이야 "하고 미련없이 당 운동을 해태하며 갈 사람은 그렇게 갈 것이다. 그래도 진보정당 운동에 희망을 걸고 남은 사람은 미련곰탱이처럼 뒷수습하느라 오랜 세월을 고생고생 할 것이다. 떠날 사람이 얼마고 남을 사람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그제서야 부문운동도 당운동도 있어야 할 사람이 분명히 정해질 것이다.

 

어제 점퍼라는 영화를 봤다. 그냥 마음먹은대로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을 순간이동해 가는 별 내용 없는 영화지만 이 영화를 보며 한가지 느낀 것이 있다. 당을 탈당하고 당을 새로 입당하는 것은 결코 점퍼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들어 모 부문이 통째로 민주노동당에 집단적으로 입당했다가 어느날 통째로 민주노동당을 집단적으로 탈당해서 다시 진보신당에 집단적으로 입당하는 과정이 마치 점퍼라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신기한 일이 없지는 않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게 여타 부문운동들도 다 가능한 것처럼 강요하지 않았나 싶다. 집단적으로 탈당을 했다고 입당이 집단적으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게 정상적인게 아니지 않는가. 그 중간에 명분이 있어야 하고, 기존 활동에 대한 반성과 평가도 있어야 하고, 앞으로 어떻게 활동해야 할지 전망과 모색도 필요한 것 아닌가. 같은 부문운동을 한다고 해도 사람이란게 상황에 따라 편차가 있기 마련이고 가치관이나 정체성도 다 틀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모두가 빨리 통일된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주사파들의 대동단결과 뭔 차이가 있는가.

 

난 이번 진보신당의 비례전략공천과 관련하여 특히 부문운동에서 사실상 바닥수준의 의식을 날 것 그대로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대가리가 생각하면 그대로 그 생각이 아래에까지 그대로 일사천리로 통용될 것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한심한가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새삼스레 신선했던 것은 장애인 활동가들의 의식수준이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집단의 서열을 A, B, C수준으로 편의적으로 나누어 보면 A가 생각이 있으면 B는 그 점에서 다르게 생각하고, C는 그런 A,B와는 다른 고민의 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A=B=C가 이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에 진보신당에 입당을 하지 않고 밖에서 바라보는 C그룹의 장애활동가들이 오히려 진보신당을 바라보는 입장이 더 냉철하고 자기의 정체성 속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A의 입장을 위해 무조건 C가 따라올것이라는 생각은 통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부문은 현장이라는 대중공간에서 자기만의 고유한 결을 계속 가지고 움직여야 커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 운동은 그런 부문운동의 역동성을 당의 성과로 흡수할 생각만 하지 말고 계속적인 추동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정책이나 의회공간에서 대부 역활을 충실히 하면 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당 운동의 부문운동의 관계는 당 운동이 하지 못한 부문운동의 면피성을 대신하는 비례할당으로, 부문운동은 정치적 활용공간의 대상으로 당 운동을 특정 시점에서 전략적으로 제휴하는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합의나 힘은 그저 수사에 그치고 몇몇 명망가들의 정치적 협상력에 의해 부문운동의 가치나 서열이 매겨지는 방식으로 비례문제가 결정되고 있다. 이러다보니 당은 부문운동의 전체를 흡수하기 보다는 몇몇 명망가들의 부문운동의 경력만 차용하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 진보신당의 내적인 힘은 부문운동이 현장에서 얼마나 활성화 되고 그 부문운동의 조직력이나 힘이 얼마나 당안으로 강렬하게 투영되는가로 결정된다. 그러나 지금의 진보신당은 스스로 그 내적인 힘을 일정의 불가피성을 핑계로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꼭 결과가 드러나야 아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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