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by poemath posted Mar 1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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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적지 않은데 당원이 된 것은 처음이네요. 음.. 사실 보수적인 현실정치에 신물이 나서 민노당에 가입도 해볼까도 몇 번 생각했지만, 밖에서 보기에 별로 매력적인  정당이 아니었습니다. 비현실적인 감각, 이념에 매몰된 모습, 획일적인 교조, 늘 안타까운 주사파 사람들, 하부에서 머무른 생동감.. 이런 것들이 못마땅해서 가입하지 않았죠. 부정적으로 열거한 그것들도 살짝 뒤집고 잘 짜맞추면 나름대로 가치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이상하게도 그게 어려운가 봅니다. 

아까 공지사항에 올라온 강령을 봤는데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점이 있네요. 제가 진보신당에 얼마나 맞는 사람인지, 또 진보신당은 또 얼마나 많은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고 지속적인 자기변화의 에너지를 담고 있는지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가입한 기념?으로 짧은 생각을 덧붙입니다. 



1. 표현 문제
 

진보신당은 아나키즘이든 공산주의든 그것이 추구하는 궁극적 이념일지라도, 또 그것의 실현을 위해 늘상 추구해야만 될 것이더라도, 일차적인 목표는 천민 자본주의 속에서 더욱 양질의 자본주의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 실천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대중 속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로 같은 의미라면 뉘앙스에 따라 어휘 선택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겨집니다. 

가령 '남성지배체제의 극복'이라는 표현은 여전히 보수적인 많은 남자 유권자에게 반발심을 줄 뿐 아니라, 많은 여성 유권자에게도 큰 매력으로 다가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에 '남성본위사회?의 극복' 정도로 고쳐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생태파괴문명의 극복'은 문명과 같은 어휘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여전히 경제와 과학기술을 외치는 많은 이들에게 지나치게 탈세속적인 느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반생태적 사회의 극복'이라고 표현해도 실제 의미는 같아 보입니다. 그리고 '미국 제국주의적 지배야욕' 역시 어감상 약간의 문제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제국주의라고 하면 1차 대전의 그런 상황만 떠올리기 때문에, 그 알맹이는 같더라도 다른 옷으로 갈아입은 제국주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낯설음, 섬뜩함, 비현실감 등을 느끼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 표현보다 '강경한 미국의 패권주의' 정도가 낫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의미와 뉘앙스가 항상 명백하게 구별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습니다. 하지만 진보정당에 대한 낮은 인지도와 지지도를 보았을 때, 큰 이념적 지향이 손상되지 않을 정도에서 표현을 다듬는 많은 이들에게 수월하게 접근하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2. 다원성
 

이번에 신당에 참여하신 분들의 면면을 보고 그 의지를 보았을 때, 저는 무지개와 같이 다채롭고 생생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젊은 층을 포함한 적지 않은 대중들은 여전히 진보는 스탈린이나 김일성식의 국가 사회주의와 획일적인 독재체제를 떠올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비록 젋은 층의 절반 가까이가 스스로를 진보성향이라 자평하더라도, 막상 그들과 이야기해보면 그들의 진보개념은 매우 넓은 것이거나, 상당히 모순적(예를들어 여성주의에 대한 극단적인 반발심을 포함하는 등)인 것으로 이해됩니다.

또한 과거 진보운동의 가장 큰 문제는 끊임없이 진보하는 진보가 아닌 이념 굴레에 갇혀버린 진부가 되어버렸다는 문제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념이란 본래, 다층적이고 생동하는 현실에 대한 인식과 실천의 용이성을 위한 틀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되어 버려 지속적인 반성과 성찰을 포기해버리면 그런 진보는 더 이상 진보일 수 없다고 믿습니다. 노동문제도, 생태도, 여성도 모두 그런 끊임 없는 뒤돌아보는 과정을 놓지 않아야만 더 올바른 실천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겁니다.

학문 일반이든 자연과학이든 그것이 정당한 권위를 부여받기 위해서 최소한의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에 대한 근본적 비판의 길이 열려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론에 근본적인 비판의 방법이 애초에 없다면 저는 그것을 단지 미신이나 부당한 권력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자기부정의 숨통은 어떤 정치체제나 정치적 이념에 대해서도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을 살펴보았을 때 진보신당이 본질적으로 '다원적인' 사회주의, 또는 '자유로운 개인'의 연대로서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음을 확실히 강령에 공표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3. 과학기술


일단 저는 자연과학이나 공학을 전공하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과학기술에 대한 강령을 지적하려는 것은, 강령에 등장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드러나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부정적인 태도는 일전에 황우석 사태에서도 확인된 진보세력의 주류 입장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태도는 생태주의에 우호적인 진보세력이기에 과학기술을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하게 됩니다. 이런 소박한 추측이 맞다면,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길게 보아서는, 저 역시 생태적 아나키즘에 희구합니다만, 그런 지향이 당장 과학기술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기보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큰 그림 속에 자연스레 두 측면을 녹여나아가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무작정 과학기술을 적대시한다면 생태주의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원시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냐는 게 제 생각입니다. 

또 그런 부정적 태도는 과학기술이 가진 위험성과 근대의 빗나간 합리주의를 염두해두지 않나 싶습니다. 이것 역시 실제 과학의 연구과정과 과학에 대한 오해로 여겨집니다. 이에 대해서 중요한 실험에는 많은 자본과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양한 집단의 지속적인 견제에서 자유롭기 힘들다는 것과, 서구 선진국에서는 자본을 대는 쪽에서 연구에 관여를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여러 전문가들의 중론을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강령에서는 과학은 자본의 통제를 받고 있고 이제 노동자 시민에 의해 통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이나 한 일인지 궁금합니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 과학적 발견과 발명이 주는 가치를 정확히 이해하기도 어렵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자본과 권력에서 자율성이 보장되는 과학자 집단의 형성을 통해서 문제를 풀어나갈 방법도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잘못된 권위든 올바른 권위든, 많은 국민들이 과학기술의 권위에 사로잡혀 있고 그 만큼 관심도 큽니다. 하지만 한국의 거의 모든 정당에서 추구하는 과학정책은 스타 과학자과 천재 육성, 일부 전략적 분야 또는 단기적이고 가시적 성과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진보진영은 오히려 폭넓은 전문가집단의 육성의 필요성, 과학의 분과다양성이 과학기술에 대한 실질적인 축이라는 인식, 경제 전문가 등 다른 전공자들이 좌우지하는 과학 정책의 폐해와 같은 부분을 지적하는 것에 대해 검토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진보성향의 전문가를 찾아 결합해서 취약한 듯한 과학기술 정책을 더 보강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과학 관련해서는 부족하나마 이상하 교수의 홈피 http://goodking.new21.net/bbs/index.php 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저로서는 어려운 글이 많아 이해하기가 힘들었는데, 과학 전공하신 분들은 놀러가시면 풍부한 읽을 거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철학, 음악, 인류학 기타 등등 다양한 꺼리가 있는 곳입니다.

*어설픈 생각을 포장하니 부끄럽기도 하군요. 짧은 의견이라도 주시면 고맙게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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