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이와 오마이갓! - 최현숙과 친구들의 첫번째 정치브리핑

by 최현숙 posted Mar 0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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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갓!

 

우리나라의 복지가 신앙심이 부족한 것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김성이 예정자의 이야기를 듣고 선거를 도와주고 있는 한 친구가 내뱉은 말입니다. 그 친구는 그리스도교 신자입니다. 김성이씨의 말이 예수의 이름을 영광되게 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인의 본분임에도 오히려 예수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경악이 아닐까 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또한 그리스도교 신자입니다. 물론 레즈비언인 제가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것에 몇몇 신자분들은 저나 저 친구의 ‘오 마이 갓!’과는 또다른 의미에서 ‘오 마이 갓!’이라고 소리지르겠지만요.

이미 여러 언론에서 김성이씨의 망언에 대해서 그렇지 않아도 한국 사회를 보수 그리스도교가 좌지우지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많이 표하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을 하느님에게 봉헌한 것에 비유하여 복지부를 하느님에게 봉헌할 것이냐는 비아냥에서부터 복지의 문제를 이렇게 안이하게 다루는 사람이 어떻게 복지부 장관이 될 수 있느냐는 질타까지 참으로 많습니다. 이 모든 반응의 핵심에는 OECD국가의 복지 예산의 1/3에 그치는 한국에서 복지장관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이것을 신앙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에 대한 한심함이 그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성정치의 관점에서 김성이씨의 발언의 문제를 좀 바라보고 싶습니다. 김성이씨는 이번에 발각된 망언 씨리즈에서 ‘가족이 잘되면 복지가 다 잘 된다’는 취지의 말을 하였습니다. 오 마이 갓. 저는 다시 한 번 외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가족보고 더 잘 하라니요. 아니, 전세계에 대한민국의 가족보다 더 온 몸으로 온갖 복지를 다 떠맡아온 사회가 있나요? 한국에서 가족은 그 자체로 생산단위이자, 복지단위이자, 은행이자 보험기관인, 그래서 복지란 복지는 온갖 것을 다 떠맡아온 단위가 아니던가요. 국가와 사회가 국민의 복지를 위해서 해 준 것이 하나도 없을 때 ‘계’를 통하여, ‘부동산 투자’를 통하여 가족의 복리후생을 감당한 것은 가족이었고, 그 가족의 뒤에는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억척스럽고도 ‘숭고한’ 희생을 바탕으로요. 이건 박완서의 소설을 한 권만 읽어봐도 알 수 있는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근대사입니다. 근데 이 가족보고 더 잘하라니, 김성이씨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그 자체로 국가와 사회의 역할을 떠맡았던 ‘어머니’라는 이름의 여성들이 요새 그만큼 허리가 분질러지도록 ‘민족의 어머니’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싶은 것일까요?

게다가 저는 이 이명박 대통령의 수퍼 울트라 신자유주의 정책앞에서 ‘가족’을 운운하는 김성이씨를 보며 다시 한번 ‘오 마이 갓’을 외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참으로 교묘하였습니다. 한편에서는 가족의 가치를 한껏 높이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가족이 지속될 수 있는 모든 복지 예산을 축소하지 않았습니까? 가족이 사회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모두 다 제가하면서 가족의 가치만을 한껏 부상시키며 실질적으로 가족의 붕괴를 초래한 것이 신자유주의라는 것은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이 사기를 치겠다니요. 마지막이자 결정적으로 제가 ‘오 마이 갓’을 외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가족 운운하는 그의 말에는 가족을 구성할 권리조차 없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려는 ‘너무나 당연한 듯이’ 찾아볼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성소수자는 가족처럼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배우자가 병원에 가더라도 사인 한 장 못하는 처지입니다. 내 옆 사람을 가족처럼, 아니 가족으로 돌보고 싶어도 돌보지 못하게 하면서 무슨 가족 타령입니까?

그래서 그의 가족타령은 허구입니다. 그의 가족은 이성애자의 가족도 지탱시켜주지 못하고 있으며, 가족바깥에서 가족보다 더한 돌봄 관계를 가지고 있는 성소수자들의 관계도 망가뜨리는 ‘돌봄 파괴’의 가족일 뿐입니다. 우리 사회에 지금 필요한 것은 다양한 형태의 돌봄 관계를 국가적/사회적으로 공인하여 가족과 가족주의를 넘어서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가족의 틀을 넘어서, 혹은 이전에는 가족의 틀로 인정받지 못하던 관계들이 가족의 틀로 재구성되면서 혈연중심의 ‘가족주의’를 극복한 돌봄의 공동체와 관계들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국가가 해야할 일은 이런 다양한 가족주의를 넘어선 가족 안과 밖의 돌봄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권장하면서 이 돌봄이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펴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이 복지부가 해야할 일이라고 한다면 복지를 하느님의 손에 맡긴 김성이에게 하느님이 외치십니다. 오 마이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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