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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해산을 제안하며] ‘우리의 당’을 넘어서: 전망을 지키고 당을 버린다



*이 글은 당 해산을 통해 노동당 운동에 대해 역사적 평가를 하고 당을 중심에 놓는 운동이 아니라 우리의 전망을 중심에 놓는 운동으로 나가자는 제안을 담고 있습니다.

*당 해산 결의 안건에 동의해 주세요(http://www.laborparty.kr/bd_member/1777219)



수단과 목적이 자리를 바꾸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수단은 목적에 의해 단련되어야 하며 그에 따라 용도가 정해져야 한다. 우리가 강력한 자위권을 인정하더라도 총기의 휴대를 동의하지 않는 것은 자위권의 형식이 반드시 총기의 휴대라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기가 자위권의 유일한 형식이 될 때에는 수단의 사용이 언제나 목적을 지향하는 것으로 반증된다. 이것은 넌센스다. 수단도 실수할 때가 있다, 그러므로 오용이 수단의 고유한 목적성을 해치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한 편으로는 수단의 물신성을 가져오고 다른 한편으로는 상상력의 빈곤을 가져온다.


다시 자위권의 비유를 가져오면 우리는 분쟁의 종식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자위의 필요성을 없앨 수 있다. 하지만 물신화는 관념적인 동시에 물질적이어서 수단의 상실은 곧 목적의 상실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우리는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당이라는 정치조직을 만들고자 했고, 만들었고, 이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하고 이에 따른 다른 세상에 대한 전망을 내놓고자 노력했다. 이런 과정은 세상을 바꾸는데 정당을 만들고 이를 통해서 스스로가 대의제를 통해 배분되는 권력의 당사자가 되며 이 권력을 활용함으로서 다른 세상을 향한 비전의 일부라도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실현한다는 경로였다.


여기엔 이중적인 맥락이 존재했다. 합법적 권력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경로로서 선거 참여라는 것과 제도 정당이 보장해주는 최소한의 제도적 보장이 가지고 있는 유리함이다. 우선 선거를 통한 사회변화가 선거를 통해서 제한되는 선택지를 넘어설 수 있는가라는 점은 논외로 하자. 제안하는 고민거리는 선거 참여와 제도적 보장은 모두 수단으로서의 유효성일 뿐이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지 못한다는 부분이다. 일상의 모든 정치활동이 선거라는 시기에 ‘결정적으로 평가 받는 구조’에 대한 저항이 선거를 요식적인 절차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이것이 타당한가라는 질문이다. 역설적으로 선거를 무시한다는 근거로 선거를 위한 일상적인 정치활동 조차 하지 않는 것이 저항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더 나아가 부르주아 법이 보장하고 있는 정당활동의 자유는 향유하고 다른 사회단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가볍게 뛰어 넘으면서도 이를 더 많은 자유를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제도 안에서 제도 밖을 지향하는 것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런 경우에 남는 것은 그저 당 자체 밖에 없다. 그건 물신화된 정당, 자위권의 유일한 현실적 구현으로서 총기처럼 목적을 상실한 수단의 절대화다.



당 자체를 의심하자


소위 진보정당 운동의 1기를 평가한다는 것이 새로운 진보정당을 위한 신앙고백처럼 이야기된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제자리를 도는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제도 정당이 가지는 어쩔 수 없는 우경화가 정당 자체의 의지만으로도 극복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우경화된 정치환경은 그 자체로 우경화된 정당 구조에서 반복적으로 재생산되었던 것은 아닌지, 즉 현재의 정치환경은 그 자체로 정당이라는 구조 자체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당은 의제를 정치적 요구로 만드는 유효한 수단이지만 해당 의제는 당의 제도화된 의사결정구조를 통해 관철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간 노동당이 보여준 의제의 제도화는 형식적인 전국위원회, 중앙집행위원회의 운영에서 수동적으로 관철되었다. 당장 기본소득 논의만 하더라도 매년 새롭게 갱신되는 맥락과 전략을 가지고 있기 보다는 오히려 언젠가는 된다는, 미신적인 대기론에 의해 정당화되었고 그결과로 이것이든 저것이든 ‘기본소득’이라는 이름만 있으면 우리의 성공이라는 자아도취적 평가로 귀결되었다. 지금은 기본소득이라는 최대강령이 아니라 어떤 기본소득인가라는 최소강령적 구체화가 필요하지만 이에 대한 성실함을 보이는 곳은 없다. 그러다 보니 4차 산업혁명에 따라 자동화, 기계화가 되면 노동이 종말을 맞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일하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한 기본소득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식의 유사 미신적 전망이 전략을 대체하고 있다. 정당은 예측하는 곳이 아니라 지향하는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현실의 사다리를 축조하는 곳이다. 이길이 아니라 저길로 가려면 당장의 길 앞에 이정표를 세워야 하지 저 하늘의 북극성만 가리켜서는 곤란하다.


작년 노동당의 정치적 정당성을 침식한 비선 논란을 보자. 비선 논란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당의 운영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당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실제 열리기도 전에 ‘세팅되고 결정’되었다. 이것만 해도 놀라운데 특정 당원의 영향력이 곧 그가 책임지고 있는 특별당비를 통해서 행사되었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극복을 이야기하는 정당이 마치 주식회사의 의사결정구조를 가지고 운영되었다는 것으로 사실상 가치의 파산에 가까운 결과다. 하지만 이로 인해 무엇이 바뀌었는가? 당원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그 사실들 정도만이라도 제대로 밝혀졌는가? 당을 통하지 않고 직접 당직자에게 지급되는 돈은 아예 정당 밖에서 벌어진 일이므로 논외가 되고 마는가.


이런 일들은 어쩌면 당 자체의 물신화, 그러니까 어떤 진보정당에도 있음직함하지만 그럼에도 의지적으로 ‘그렇게는 하지 말자’라고 스스로 긴장하고 견제했던 그것에 대한 기준이 없어졌다는 걸 보여준다. 적어도 지역활동이나 당협활동을 전제로 출마했던 지역 대의원이, 그래서 아예 적절한 사람이 없다면 비워둠으로서 스스로 활동의 공백을 떠올렸던 상징적인 조치가, ‘모든 당원은 출마의 자유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탈맥락적인 일반 민주주의에 의해 대체되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약속한 ‘이후에 지역활동을 열심히 하겠다’는 것은 공염불이 되고 만다. 결국 당이라는 것이 구체적인 활동의 결산이 아니라 사사로운 개인적인 실험의 공간이 되고 말았다. 이를 다른 세대의 실험이라고 포장하는 것도 우습다. 실험은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한번도 구체적인 목표가 등장한 적이 없는 데 ‘실험도 두고보지 못하나’라고 역성을 내는 건 다른 의미로 당의 사유화에 다름 아니다. 당이라는 공유재를 남벌하는 것이고 그럼으로서 남아 있는 것을 아예 싹 쓸어버리는 비극이다.



당을 버리고 전망을 지킨다


당을 해산하자는 것은 이 당을 폐기처분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당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실패와 이로 인해 만연해 있는 무기력을 적극적으로 해소하자는 제안이다. 지금은 2천여명의 당권자 당원이 아니라 오히려 나머지 8천여명이 넘는 비당권자 당원에 주목할 때다. 이들이 당의 잔여인가? 바람만 불면 훅하고 떨어져 나갈 사람들인 건가? 언제든 타당에서 손짓 한번에 움직일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노동당의 당적을 유지하면서도 당권을 포기한 것은 가장 구체적으로 정치적 의사표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당권을 가진다는 것은 당의 운영에 공동의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당의 지도부는 과반수의 정치를 해왔다. 반론이 있어도, 반발이 있어도 과반수의 의결을 통해서 당론을 결정해왔을 뿐이다. 이런 정치의 부재 속에서, 지난 2~3년동안 당이 결정을 할 수록 반수에 가까운 당원들을 비당권자로 만들어 왔다. 당권을 유지하는 것이 당의 운영에 공동으로 책임을 진다는 것이라면 스스로 과반수에 미달해 배제되는 당원들이 구태여 당권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 이런 일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우습지만 ‘숫자에 의한 지배’를 꾀한 것은 역설적으로 1차, 2차 탈당파의 선택이었고 그 이후 지속적으로 당권을 행사하고 있는 현재의 당권파들의 선택이다. 스스로 비난하고 있는 이들의 실패한 전략을 스스로는 성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정당은 당규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 행위가 당규를 넘어선 정당성을 가질 때 리더쉽이 만들어진다. 규정에 의해 정당을 운영하는 건 구태여 리더쉽이 필요한 행위가 아니다. 그렇게 본다면 현재 노동당의 당원들 중 다수인 비당권 당원의 정치적 욕구를 지속적으로 무시할 수 있는 건가라는 질문에 진지하게 답을 해야 한다. 이들이 다수여서가 아니라 당원이면서도 현재 당의 운영에 대해 비토를 하고 있는 그 정서를 적극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리더쉽을 존재 말이다. 당을 해산한다는 것은 다시 1만명에 가까운 당원들에게 정치적 시민권을 제공하는 것이고 이들이 당의 운영에 대한 비토를 넘어서, 우리가 공유했던 정치적 전망 앞으로 다시 불러오는 일이다. 그리고 다시 당 자체가 아니라 당을 통해서 우리가 만들고자 했던 다른 세상에 대한 꿈을 제안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존의 노동당을 기본소득당으로 바꾸는 것이 새로울 리가 없다. 대표단이 전체 다 사퇴하나, 대의원들이 사퇴하나, 전국위원들이 사퇴하나, 기존의 의사결정기구에 대한 변화가 없는데 그 당에 들어가서 새로운 정치적 권리를 획득한 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실제로 사회운동 정당으로의 전환이 실패한 것은 당 기구 어디도 스스로 가진 기득권을 내놓는 곳이 단 한군데도 없었기 때문 아닌가. 전통적으로 정당의 변화가 왜 조직대 조직의 통합으로만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당명의 개정이 늘 ‘사후적으로만’ 이루어졌는지를 생각해보면 금새 답이 나온다. 그러니까 당명을 개정하면 새로운 당원들이나 세력이 들어올 것이라는 것은 공상을 넘어선 망상에 가깝고, 오히려 현재의 리더쉽이 자신들의 권한을 최대한 내놓고 새로운 세력이나 당원들을 불러온 다음에 이들과 함께 새로운 정당의 이름을 결정해야 한다. 이것이 교과서까진 아니어도 역사적인 정석에 가깝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유는 뭘까. 둘 중 하나다. 스스로의 당권을 내놓을 생각이 없거나, 혹은 새롭게 들어올 것이라 여겨지는 당외부의 세력 역시 스스로의 리더쉽 하에 놓여 있다는 확신이 있거나 일 것이다. 어떤 것이든 그것은 새로운 정치와 전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스스로 극복하고자 하는 저 기민한 비선정치나 혹은 눈가림용 유사단체를 통한 우회상장에 다름 아니지 않은가.


스스로의 당권을 위해 역사적으로 가져왔던 당의 전망을 버리려 해서는 안된다. 노동해방을 말하는 정당의 지도부가 ‘노동을 생각하면 힘듦이 떠오른다’와 같이 하품나오는 소리를 해대는 것은, 이 정당이 과학적인 노선을 포기했다는 자기 고백이다. 어떻게 기본소득의 재원이 마련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없이 ‘로봇이 노동을 대신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건 전태일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이건희의 유토피아일 뿐이다. 이건 스스로 역사적 진보정당을 포기하겠다는 것이고, 그래서 전망을 버리겠다는 것이고 나아가 노동당을 노동당 답게 만들었던 처음과 끝은 버리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는 것은? 한 줌의 당권이다. 이게 혁신인가.



진짜 암흑으로 가자


당에서 당으로, 숙주를 쫓아 움직이는 바이러스 같은 정치활동을 잠시 멈추자. 당은 당 자체로 자기를 유지하려는 의지를 가지는데 우리는 그것의 가장 극단에 놓여 있다. 오히려 먼저 간 이가 갈파했던 ‘암흑 속으로’ 제대로 돌진해보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현장이다. 노동조합이나 무슨 단체니 하는 추상화된 현장이 아니라 우리가 효과적으로 개입해서 사회주의적 전망을 세울수 있는 현장이다. 임차상인들의 싸움에 연대하면서도 이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개입을 포기하지 않고, 무상교통을 주장하면서도 교통요금 인상 공청회를 무산시킬 수 있는 현장이 필요하다. 깃발이 스스로 말하도록 두는 것이 아니라 깃발 밑의 사람들이 활동하고 말하도록 하는 정치활동이 필요하다.


박용진의 사립유치원 입법과제가 거기에 머물지 않고 사립유치원의 사회화로 갈 수 있도록 지역 현장을 조직해야 하고, 뒤걸음질 치고 있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해 새로운 형태의 공공부문 체제에 대한 전망을 만들어야 하며, 정당 간 나눠먹기 정당개혁이 어떻게 하면 시민주권을 강화하는 소환제나 직접 발의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현장이 필요하다. 정당의 다름이 아니라 의제를 효과적으로 견인해서 우리의 전망으로 소화하는 것이 관건이고 이를 구체적인 현장에서 실험하고 조직하면서, 각각의 경험을 효과적으로 추상화해서 우리의 슬건으로 만들고 기존 정당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도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에 대한 전망을 놓치지 않는 하방이 필요하다.


이를 비정당적 정치세력화라고 한다면, 우리는 포데모스와 시리자의 경로가 정당을 통한 우경화로 갈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진지한 교훈을 바탕으로 제도적 다수를 획득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유효한 소수를 조직하는 것에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깃발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깃발이 놓인 구체적인 현장과 그 밑의 사람들이다. 이를 위해 현재의 노동당을 해산하고 새로운 경로를 탐색하자. 당을 버림으로서 전망을 세울 수 있다. 여전히 정당은 중요하지만 예전만큼 정당이 중요한 시기는 아니다. 따라서 당명을 바꾸면서 새로운 정치적 전망을 세우려는 것은 새로운 정치전략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가장 낮은 하수의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미 당 지도부에 의해 비토된 노동당명을 구해낸다고 해서 그것을 승리라고 할 순 없다. 오히려 노동당을 역사의 캐비넷에 넣어두고 아예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 새로운 진보다. 아무리 애를 써도 누더기로 새 옷을 만들 순 없다. [끝]


  • 마흔의봄 2019.06.24 21:53
    새 옷과 새 신이 다 좋을 수 있다!
    남들 보기에.....
    누더기도 잘 다듬고 손질하면 내 몸에 잘 맞고 편할 수 있는 것이지요!
    명품의 새옷이 아니라면 .....
  • 김철호 2019.06.24 22:26
    좌익소아병이라고 붙이기에도 쫌ㅡ
  • Julian 2019.06.25 21:41
    김상철 씨는 실력있고 존경받는 몇안되는 당원중 한분입니다.
    근거를 대는 정당한 비판이 아니라 내맘에 안드는 주장을 한다고 감정있는 비난을 하시는걸로 나는 느낍니다 이런게 합리적 좌파는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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