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령(초안)... 내용도 절차도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작성자
담쟁이
작성일
2021-12-09 16:51
조회
1749

전국위원회에서 제출된 회의자료에 강령(초안)이 있는데, 심각한 문제점이 몇 가지 있다.

관련된 문제를 명확하게 해두지 않으면, 심각한 실천상의 문제로까지 확대될 수 있음을 느끼며 당원 여러분과 함께 토론해 보려고 이 글을 쓴다.


1. 첫째, 강령과 당헌의 개정이라는 중차대한 안건을 다루면서 사전 논의가 생략되었다.


중집에서 개정안이 처음으로 공개된 것으로 안다. 그 이후 공개적인 당원 의견 수렴 없이 바로 당대회에서 강령과 당헌당규를 개정하자는 안건을 전국위원회에 상정했다. 당원들은 지금 강령과 당헌당규가 바뀌는지 조차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강령(초안)에서 일곱 줄에 걸쳐서 당원이 주체가 되는 당 활동을 서술하고 있지만, 그저 문서에 불과하다. 말 다르고, 행동이 다르다. 신뢰가 시작부터 무너지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강령과 당헌의 중대한 문제점들이 수정될 여지가 없다. 전국위원회에서 논의하면 되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하자가 심각하고 절대적으로 부족한 며칠 안 남은 시간 안에 검토될 문제들이 아니다. 문제가 많아서 수정안 정도로 해결될 것 같지 않다.

그러면, 이번에는 강령의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짚어보자.


2. 강령의 총론에 대한 문제점부터 짚어보겠다.


(1) ‘생태사회주의로의 대전환’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하다.

강령(초안)의 시각은 구좌파의 문제의식, 과거 소련과 동구의 국가사회주의와 다를 바 없다.

목차 ‘1. 사회주의를 실천하는 당’부터 ‘3. 사회주의라는 미래’ 까지의 서술이 강령의 총론에 해당되는 것 같다. 두 번째 문장에서 ‘20세기 사회주의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그 한계와 오류를 극복’ 하겠다고 선언하고 있지만, 과연 그러한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생태주의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물론 ‘성장주의에 빠져 생태파괴를 등한시하고, 성별위계와 일상적 삶의 해방을 부차화한 한계와 오류를 딛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회주의를 모든 인간의 총체적 해방운동이자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생태사회를 건설하는 운동으로, 그 이념과 실천을 혁신하고 재구성해 나간다.’ 라고 세 번째 문장에서 언급은 하고 있다.

그러나 강령 전체의 목차 구성과 제목, 각론(4. 우리의 실천 과제)의 배치를 보면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문제점 중 하나로 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생태위기가 마치 자본주의만의 문제인 것처럼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과거 국사사회주의 체제에서도 생태위기와 핵위기는 해결될 수 없었다. 아니, 해결의지조차 없었다. 환경문제는 기술적으로 해결 가능한 부차적인 문제로 보았으며, 체제경쟁을 위해서 핵무기를 수단으로 삼았다.

생태사회주의는 자본주는 물론 사회주의까지 포함한 산업문명 전체에 대한 반성적 통찰을 바탕으로 둔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별도의 제목을 둔 하나의 항목으로 배정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누군가는 강령의 문제가 아니고 실천상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생태사회주의를 적극적으로 표방하지 않고, 사회주의만 강조한다면 과거 국가사회주의에서 환경문제를 보던 시각이 다시 재현될 것이다.

실제로 한국사회 체제변혁을 위한 원탁회의의 연속토론회에서 구좌파의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주장이 등장한 바 있다. 체제변혁 연속토론회의 열린 두 번째 토론 ‘정의로운 적록전환’ 토론회에서 노동당이 2035년 핵폐기 로드맵을 소개했는데, 이에 대해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반론이 있었다.(‘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 이라는 표현이 명시적으로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앞뒤 말의 맥락상 명백하다. 구조조정, 신규채용 등에 대해서 말을 하는 와중에 한 발언이다. 확인하고 싶은 분은 다음 동영상의 1:30:40 ~ 1:32:40 사이의 약 2분간 발언을 시청하시라. )


(2) 우리 운동의 근본조건인 분단국가로서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

물론 각론인 ‘4-4. 한반도·동북아 평화와 호혜·평등의 국제질서 실현’에 관련된 내용이 있기는 하다. 문제는 총론에서 이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왜 총론에서 다루어야 하는가? 이 문제가 남한 사회주의 운동에 특수한 근본조건이기 때문이다.

분단은 우리 운동의 모든 성과를 한순간에 앗아가는 근본적인 제약조건일 뿐 아니라 남한 사회주의 운동이 직시해야 할 특수한 근본 조건이다.

분단으로 인한 갈등은 언제라도 전쟁으로 발화할 수 있으며, 따라서 우리가 지금 사회적으로 치열하게 논쟁하며 소중하게 가꾸어 가고 있는 모든 사회주의적 가치들, 그리고 힘겹게 투쟁해서 이룬 모든 성과가 전쟁이 터지는 순간 모두 잿더미와 함께 한방에 날아간다. 남북의 노동자들끼리 총질을 해 댈 것이고, 자연은 파괴되고, 여성은 폭력에 노출되며, 소수자와의 대한 연대와 복지는 모두 사라질 것이다.

분단을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했던 한국전쟁 이후 남한의 모든 진보운동은 헤어나기 힘든 레드 컴플렉스의 굴레가 씌워졌다. 우리 운동에서 분단의 굴레가 아닌 것이 거의 없다. 선거는 대중정당에는 숙명과 같은 것이지만, 역대선거에서 북한문제는 선거의 변수 이상의 상수였다. 부르주아독재가 관철되고 있는 남한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시도는 사소하고 작은 것일지라도 빨갱이라는 한 마디로 터부시되는 상황이나, 국가보안법이 헌법 위에 군림하는 상황이 이러한 조건 때문에 파생된 것이다.

이와 같이 분단에 의해서 파생되는 문제들을 좌파운동 진영은 그동안 민족주의자의 통일운동 에 맡겨둔 채 무책임하게 방치했다. 이러한 불철저함이 이번 강령(초안)에서 역시 반복되고 있다. 분단으로 인해 발생하는 남한 사회주의 운동의 근본적인 과제를 총론에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각론의 여러 과제와 함께 병렬적으로 열거할 뿐이다.

한반도의 상황에 대한 언급이 없으니 총론만 보면 유럽의 구좌파 정당의 강령으로 써 먹어도 손색이 없다.


(3) 합의되지 않은 대안을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3. 사회주의라는 미래’에서 제시하고 있는 ‘민주적 계획경제’라는 용어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과연 이런 내용의 합의가 언제 우리 당 내에서 이루어진 적이 있었는지, 아니 논의조차 있었는지 궁금하다.


3. 각론은 너무 세세하고, 합의되지 않은 정책들이 너무 많다.

각론에서는 다섯 가지 범주에 걸쳐서 일곱 가지 항목을 다루고 있다. 각 분야의 서술과 정책들이 하나하나 치밀하게 검토하기 위해 당원들에게 설명하고 토론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그러한 과정이 전혀 없었다.

예를 들어 ‘4-4. 한반도·동북아 평화와 호혜·평등의 국제질서 실현’에서는 징병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과연 당 내에 합의된 것인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며, 군축 등 관련 쟁점과의 연관성 속에서 논의된 것인지 여부도 불분명하다.

더 큰 문제는 강령에 정책적 수준의 이러한 이슈를 담고 있으면 나중에 상황이 바뀌어 정책을 바꿀 필요성이 생길 때면 강령을 바꾸어야 하는 거창한 상황이 되고 만다는 점이다.

문제는 또 있다. 우리는 정책적 수준까지의 합의를 필요로 하는 정당인가? 징병제를 반대하는 사람은 강령을 위배한 당원이 되는 것인가?

통상 이질적인 정치세력이 합칠 때, 정책적 차이를 차후의 논의과제로 넘기고 합의된 큰 틀의 체계만 강령에 담는다는 점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왜 이렇게 서두르는가?


4. 전반적으로 조직의 성격이 전국적 대중정당이 아니라, 소규모 운동단체로 후퇴하는 것 같다.

당헌당규에 대해서는 오늘 언급하지 않겠지만, ‘전당원대회’는 회원 몇 백 명 정도인 조직에서나 가능한 발상이라는 점은 지적하고 싶다.

강령 총론의 문제의식과 전당원대회의 발상을 보면, 지금 우리가 대중정당이 아니라 소규모의 특정이슈를 목표로 한 운동단체로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는 말이 있지만, 단일한 사회주의 대중정당 건설이라는 미명 하에 살도 내버리고 뼈도 내버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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