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집단탈당 때 비대위원으로서 진보신당을 지켰습니다.

작성자
전원배
작성일
2023-01-10 16:42
조회
611

울산 노동운동 이후 서울에서 연구소 활동, 진보신당, 노동당 활동에 대해 당원 동지들과 공유합니다.

울산에서 현중, 현차, 정규직, 비정규직 운동을 해왔지만 사실 울산 노동운동은 93년 소위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유화책을 쓸 때부터 점차 변혁적 성격이 약화되면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2000년에 현차 집행부가 현장 라인의 16.9%에 비정규직을 도입하는 것에 동의해주었습니다. 또한 그 많던 학생운동 출신 활동가들도 점차 떠나 울산에서의 노동운동은 재생산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우리 조직 역시 새로운 활동가들이 필요했고 저 역시 변화된 조건에서 변혁적 노동운동을 다시 고민하게 됩니다. 저는 현장을 동지에게 맡기고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의 무대를 서울로 옮겼습니다. 사회실천연구소, 사회과학아카데미, 중랑 민중의 집,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젊은 활동가들과 교류하고 변혁적 학자들과도 교류했습니다.

2007년부터 영등포에 있는 '민주노동자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함께 하는 젊은 동지들이 '영등포 민중의 집'을 만들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영등포 진보신당 동지들과 함께 영등포 민중의 집을 만들기로 하면서 진보신당에 입당하게 됐습니다.

2011년 노회찬 심상정 등이 민주노동당 및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추진할 때 진보신당 내에서 진보대통합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독자파로서 추진위원으로서 진보신당의 독자적인 발전과 졸속적인 통합 논의에 반대했습니다. 심상정, 노회찬, 조승수 등은 통합결의가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됐음에도 집단 탈당을 했고 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됐습니다.

저는 비상대책위원으로서 홍세화 대표 체제를 출범시켰습니다. 2012년에 진보신당이 민중경선으로 대선후보를 선출하자고 해서 김소연을 대선후보로 선출했고 전 선본에 결합했습니다.

선거 이후 홍세화 선생이 대표로 있던 지식협동조합 <말과 활>에서 2016년까지 운영위원으로 활동했고 또한 2015년부터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운영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문제연구소에서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민중투쟁, 러시아혁명에 대한 강연을 해왔습니다.

지난 대선시기에는 노동당 이백윤 사회주의후보 선본에 결합했고, 그 이후에는 노동당 노동자정치행동 집행위원 겸 전국위원, 전국결집 정책팀장, 노동전선 정책위원을 하면서 공동실천, 포럼, 노동자신문 등에 참여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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