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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위원회 논평]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에 부쳐
- ‘묻지마 사건’에 대해 묻는다


강남역 ‘묻지마 사건’. 무엇을 묻지 말라는 것인가?

2016년 5월 17일 새벽 1시. "강남 수” 노래방 건물 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했다. 그는 1시간 동안 공용화장실에서 범죄를 계획했으며, 일면식 없는 피해자를 수차례 흉기로 찔렀다. 그는 경찰진술에서 범행 동기를 "여자들이 무시해서" 라고 밝혔다. 언론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일면식도 없었다.’는 이유로 이 사건을 '묻지마 살인'이라고 보도했다. 대형 프렌차이즈 노래방은 유흥가 상가 건물로 표현되었고, 범죄자는 ‘신자를 꿈꾸었던 청년’으로 호명되었다.

‘묻지마 살인’ (묻지마 범죄)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충동적인 가해 행위를 특징으로 하는 범죄를 일컫는다. 그러나 이번 강남역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은 ‘불특정 다수’를 향해있지도, 충동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범행 장소를 선택했고, 1시간 이상 ‘여성’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여성에게 무시당해서”라는 범행 동기는 이 사건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이 사건은 ‘묻지마 살인’이 아니라, 여성혐오에 기인한 살인이라는 것을. 범죄에 대해 ‘묻지.’ 말라는 것은 피해에 대해 '묻지.' 말라고 하는 것임을. 여성혐오살인을 ‘묻지 말라’는 것은 더 많은 여성을 폭력과 살인 속으로 몰아넣는다는 것을.


여성혐오는 여성의 생존을 위협한다.

해당 사건에서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는 왜 범행동기가 되었을까. “여성들은 남성보다 못한 존재다”라는 우리 사회의 무의식은 ‘나약하며, 보호받아야 하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력을 갖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여성은 개별 여성이 아니라 ‘여성들’로 치환되기 때문에, 개별 여성에 대한 불만이나 갈등은 여성 집단에 대한 혐오와 폭력으로 드러난다. 이제 여성혐오는 담론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최근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과 함께, 여성혐오가 더욱 가시화되었다. 여성혐오는 여성들에게는 자기혐오로, 남성들에게는 여성멸시로, 사회적으로는 성차별로 나타난다. ‘여성’이 남성인 나(가해자)를 무시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그 마음의 밑바탕에 여성혐오가 있다.

이번 사건은 여성혐오가 여성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사실 여성은 늘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왔다. 강력범죄는 ‘성평등’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여성 강력범죄 피해자 수는 남성 피해자 수보다 월등히 높으며, 그 증가율마저도 일관되게 가파르다. 지난해, 한국여성의전화는 이틀에 한 명씩 친밀한 관계에서의 여성 살인이 벌어짐을 보고했다. 또한, 전북 여성의전화 조사결과에서 기혼여성 10명 중 3명은 남편에 의한 폭력의 경험을 공유한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피해자를 애도한다

이번 강남역 여성혐오 범죄를 두고 많은 이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임시분향소가 세워졌고 국화꽃들이 놓였다. 이들의 추모는 단순히 갑작스러운 범죄에 희생된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만을 담고 있지 않다. '살女주세요. 넌 살아男았잖아.', ‘여성혐오는 사회문제입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끔찍한 일을 당한 피해자의 삶은 누가 보상해줍니까.’ 라는 추모 포스트잇 속 문구는, 피해 여성에 대한 애도의 마음과 함께 한국사회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의 분노를 고스란이 담고 있다.

우리는 ‘강남역 10번 출구’로 명명된 이번 여성혐오살인의 피해자를 가슴 깊이 애도한다. 그녀 또한 미래에 대한 희망과 설계가 있었을 것이며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함께 삶을 나누고 있었으리라. 우리는 죽음으로 인해 모든 가능성과 5월 18일을 맞이하지 못한 그녀의 삶과 죽음을 추모한다.


여성혐오범죄에 맞서기 위해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또다시 여성의 밤길이 보호와 통제 아래 갇혀서는 안 된다. 여성들이 스스로의 활동을 검열하면서 위축되거나, 최소한의 시민권, 이동권조차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 2004년 발생한 여성에 대한 연쇄살인사건 이후 온갖 언론과 개인, 가족들은 여성들의 밤길을 통제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그에 굴하지 않고 ‘달빛 시위’를 벌이며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해왔다. 누군가는 ‘아직’ 여성을 약자로 의미화할지 모르나, ‘이제’ 더 이상 무기력한 약자인 것만은 아니다.

노동당 여성위원회는 침전하는 애도와 끓어오르는 분노의 마음을 모아, 더 이상의 여성혐오살인을 만들지 않기 위해 새로운 질문을 ‘물을’ 것이다. 당연한 ‘현실’을 바꿔내고 사건과 대책에 대해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왜 폭력 피해여성에 대해서는 옷차림과 음주 여부에 주목하면서 왜 가해자에 대해서는 그의 장래와 취미에 대해 묻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하며,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성차별적 피해에도 여성혐오범죄는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지 못했는지에 대해 물어야 한다. 다른 질문을 던지며, 다른 사회를 꿈꾸며 여성혐오폭력에 맞서 정치적 의제와 운동을 실천해야 할 때이다.


2016년 5월 18일
노동당 여성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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