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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사회당이라는 잊혀진 그리고 버려진 꿈에 대하여


폐허 위에서, 그것도 여전히 진행 중인 폐허 위에서 건설적인 말을 보태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동당을 함께 해 온 이들 각자의 머리와 마음 속에서 선택적 폐쇄와 분리처분이 격하게 작동하는 지금 어떤 이야기도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이를 잘 알면서 작성하는 이 메모는 단지 더 늦기 전에 이제까지의 전개와 지금의 상황을 주관적으로 정리함으로써 나름 객관화해보기 위함이다. 

1. 
이십여년 전 소위 좌파들이 엔엘에 대해 경멸적으로 들이대었던 대표적인 비판이 ‘단계론’과 ‘대중추수주의’였다. 지금이 민족사적 일대 전환기이므로 뭔가 민주정부나 정권교체가 필요하고, 현장의 대중들이 이를 간절히 원하고 있고, 그래서 이를 실현할 전선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였고, 좌파들은 이를 꾸역꾸역 넘어서 독자후보를 냈고 독자정당을 건설했다. 언제든 단계에 대한 사고와 대중에 대한 관심과 책임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가 다른 상황 판단들을 좌지우지할 때 운동이 좌표를 잃고 망가진다는 점에서 좌파들은 비판했던 것이다. 
‘진보의 재구성’에서 ‘진보재편’으로 그리고 다시 ‘진보결집’으로 스리슬쩍 넘어오는 논리를 지배했던 인식은 이 단계론과 대중추수주의와 다르지 않았다. 진보결집 당원모임의 릴레이 기고 모두에서 단계론이 거리낌없이 펼쳐졌고, 확인되지 않은 대중이 호명되며 결집의 불가피성이 역설되었다. 물론 노동당의 쇠락한 상태가 혹자에게는 더 주요한 논리였겠지만, 이러한 단계론과 대중의 요구 논리가 적당한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설령 잠정적으로 단계론과 대중추수를 선택하더라도, 그것이 언제까지 그리고 어떻게 활용되는 불가피한 우회로라는 설명이 있어야 하며, 이후 어떻게 만회 또는 해결할 것이라는 약속이 있어야 한다. 

2. 
당원총투표는 결국 많은 논란과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당원총투표에 찬성하는 이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은 당원의 총의라도 물어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여론조사 성격의 총투표까지 반대하는 이들을 공박했다. 그러나 당원 여론조사라면 4자모임 추진에 대한 찬반 보다는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이 물어보는 것이 상식적이었을 것이다.  

1) 노동당은 다음 중 어느 세력/집단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중복응답 가능)
①국민모임 ②계급정당추진위 ③노동정치연대 ④녹색당 ⑤정의당 ⑥기타(    )

2) 노동당이 위의 세력/집단과 함께 하는 방식은 무엇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중복응답 가능)
①단일정당(합당) ②정당연합 ③선거연대 ④사안별 제휴 ⑤시간을 둔 공동활동 ⑥기타(    )

물론 이런 식의 여론조사는 훨씬 전에, 아마 2013년 재창당을 앞두고 했어야 유의미했을 것이지만 당시에는 당명 여론조사로 협소화되었다. 그럼에도, 지난 봄 즈음에라도 이렇게 당원들에게 물어보았다면 매우 다양한 선택지의 조합이 나왔을 것이다. 이런 접근이 현 진보운동의 상황 맥락이나 긴급한 사정을 모르는 아마추어같은 소리라고 이야기하거나 당대표의 공약에 기반하여 프레임을 짤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면 당원 의사에 대한 존중 언급은 효력을 상실하고 만다. 4자모임 찬반을 묻는 당원총투표는 오히려, 이미, 당원의 선택권을 심각하게 제약하는 것이었다. 

3. 
진보결집의 현실태로 혹자는 정당연합론을 이야기한다. 정당연합은 좌파정치의 현대적 조직 방식일 수 있고, 현행 정당법상 제약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한 조직 형태이자 의미 있는 존재방식일 수 있다. 그러나 정당연합이 생각해볼 수 있는 결과라는 것과, 그것이 지향해야 할 모델이거나 목표여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 시리자든 덴마크의 적록연합이든 오랜 시간동안 형성되고 투쟁해온 정파와 당파들의 귀납적 현상일뿐이다. 
더구나 당장 세력의 왜소함이 갖는 한계나 노선투쟁의 곤란함을 회피하기 위한 방도로 정당연합이 제시되는 것이라면 선후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정파와 당파의 내용과 정체성이 분명하면 다양한 세력 연합의 방식이 가능하다. 지금 진보결집 세력이라도 정당연합의 한 구성이 될 만큼 정치적으로 스스로 통합되어 있는지 지극히 의심스럽다. 

4. 
소위 노심조 원한론에 대하여. 현실정치에 대한 유연한 접근 필요성, 좌파정치인 개인에 대한 자율성과 가치 평가를 요구하는 최장집 선생의 논리 모두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을 인간으로서, 혹은 정치적으로 용서하거나 손을 맞잡을 수 있느냐는 문제 뒤에 간과되는 것이 있다. 그들이 진보신당을 떠날 때, 술자리 정치 말고는 어떤 공개적 노선투쟁이나 설득 노력도 없이 자신들 중심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탈당했다는 점이다. 이런 줄서기 계파정치에 대한 묵인과 함께 하는 실용주의와 편의주의는 통합진보당이 경험한 비극적 사태와 연결되며 지금 진보결집 모임이 통합 조직의 미래에 대하여 갖는 모호한 태도와도 무관치 않다.  
노동당과 정의당의 강령이 이미 80% 이상 같으니 같이 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노선투쟁도 필요 없고 관철해야 할 무엇도 딱히 없을 텐데 협상력 확보는 왜 필요한가. 그러한 협상력 역시 인물중심의 세력 확보를 위한 것이라면 노심조식 계파정치는 닮은 꼴로 반복될 것이다. 좌파가 깃발만 뜯어먹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계파 역시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라는 반문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계파정치가 사람의 성장을 막고 노선의 충돌을 통한 발전을 막고 상대 계파와 자신의 부조리를 용인하게 만들어 온 모습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좌파정치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요컨대 노심조 사과 보다 중요한 것은 계파정치를 극복할 구상과 노선이다.  

5. 
녹색사회당은 진보의 재구성을 약속한 진보신당의 창당 정신이 귀결될 수 있는 그럴듯한 명칭 또는 노선이었다. 그러나 이미 외부에서 녹색당이 만들어졌고 녹색사회당 제안은 내부에서도 잊혀졌지만, 그러나 반자본주의 녹색좌파라고 하든 적록정치라고 하든, 녹색사회당의 문제의식과 상징은 버려진 것이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진보신당에서 가장 큰 세력이었던 녹사연은 녹색사회주의 노선을 단지 참칭만 하다가 2013년 재창당을 거치며 사실상 폐기했고, 네가지 색 바람개비는 무슨 해설을 덧붙이더라도 국제적 사민주의의 상징인 붉은 장미로 대체되었다. 노동당이라는 당명은 크게 보면 진보신당 독자노선을 유보한 (외부 노동조직 세력의 결합을 필수적이라 생각하는) 지금의 진보결집 모임과 (노동을 통해 당의 독자성을 확보하자는) 지금의 당의 미래가 선택한 역설적인 타협이었다. 이 미완의 타협은 재창당 이후 노동당을 M&A를 기다리는 중소기업 상태로 만들었고, 지금의 진보결집 파동까지 노정한 것이었다. 
지금의 진보결집에서 녹색사회당의 문제의식은, 굳이 몇 줄의 정책 문구에서 찾지 않는다면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다. 지금 단계의 현실 정치에서는 녹색사회주의 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을 것이고, 이제 와서 녹색사회주의를 위해 진보결집을 한다는 공문구를 바라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보며, 녹색사회당 또는 그와 동일한 내포와 외연을 의미했던 무지개사회당을 주장했던 내 스스로의 부족함 역시 여기 적어둔다. 다만, 녹색사회주의를 선택할 때에도 버릴 때에도, 붉은 장미를 선택할 때에도 버릴 때에도 어떤 심각한 논쟁이 없었다는 것 역시 적어둔다. 

6. 
이 폐허 위에서 무엇이 가능할지 당연히 고민스럽다. 누군가에게 답이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노동당 자체가 잘못 끼워진 단추였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노동당 자력갱생론의 현실성을 차치하고라도, 더욱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굳이 복기를 해서 답을 찾아 보자면 진보신당과 사회당 합당 즈음으로 ‘공장초기화’를 해보는 것인데, 복기의 의미는 있지만 뭘 해결해주지는 않는 공상일뿐이다.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을 몇 번의 계기는 아프게도 이미 지나갔다. 
어쨌든 내가 존중하는 이들과 가급적 같이 할 수 있는 방향을 숙고해 볼 것이다. 다른 나라든 조직이든 여러 길이 참고가 될 수 있겠지만, 결국은 한국에서 대략 30년 뒤, 10년 뒤를 바라보는 의미있는 행보는 무엇일지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떤 자리에 있거나 지킬 것인지를 판단해야 할 것 같다. 녹색사회당의 꿈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지도 아울러 생각해 보려 한다. 
  • 원시 2015.07.08 18:10
    녹색 평화당으로 하면, 조금 전향적으로 고민해보겠습니다. ^^

    많이 늦었죠? 제 이러한 아쉬움을 달래코저, 김현우님에게 공개 편지를 하나 지금 작성합니다.
  • Misun 2015.07.08 19:10

    쓰신 글에 대해 공감하는 점도 있고, 조금 그렇지 않은 점도 있고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냉소적인 비애감도 느껴지는 그러한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절이 하 수상하다보니..

    현시점에선 단계론이나 대중추수주의 입장에서도 보면 그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대중들로부터 이미 외면받고 있는 진보 정당의 절박한 처지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점과(실제 운영의 처지에서도 그러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대중 지지와 기반을 점차로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결국 얼마만큼 양보와 타협선이 가능한지에 대한 그 비타협적 마지노선을 각자 모두 함께 정해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보여집니다.

    제가 볼 땐 녹색사회주의 꿈이 아예 버려졌다고도 보질 않습니다. 잠시 유보되고 있는 것뿐이지. 아마도 진보결집파 분들 중에도 분명 녹색사회주의 꿈을 지닌 채로 함께 결집하려 했던 분들도 분명 있었을 걸로 봅니다(제 개인적으로는 4자연대 진보결집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이었긴 했지만요). 지금은 이러하지만 언젠가는 녹색사회당의 꿈을 이루고말겠다는..

    게다가 그동안 녹색사회당의 꿈을 지니고 있었든 혹은 그렇지 않았든 간에 여전히 녹색사회주의가 현실화 된 적도 아직 없었습니다. 녹색사회주의에 대한 꿈을 속으로는 지니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마치 이율배반적인 것처럼 보이는 타협의 길로 들어서는 것도 어차피 현실 정치의 영역일 것입니다.

    그리고 위에서 제안하신 노동당 내 설문 조사는 제 생각에도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한 가지 더 추가하고픈 설문은, 정작 노동당 바깥의 일반 대중들은 이곳 노동당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혹은 진보 정당에 대해선 어떤 이미지로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한 번 설문 조사를 해보셔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추공 2015.07.08 19:56

    정당연합에 대한 생각에 동의합니다. 10년 후의 정당연합 모델의 한국적 맥락이 뭔지는 우리가 알 수가 없겠지요.
    정당연합이 중요한 건 현재의 통합모델과 달리 이것은 애초에 합의의 정치를 통해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옳은 말씀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목표를 가지는 것과 아닌것은 차이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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